오색 빛깔로 물든 올림픽공원

올림픽공원은 집에서 가까운 터라 때때로 산책을 나서기도 하는 곳이다. 평일에는 다소 한적함이 더하는 곳. 반면 날씨라도 좋은 주말이라면, 많은 인파들이 몰려 그곳의 정경을 벗삼아 유유자적을 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콘서트도 자주 열리는 곳이라서 음악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즐거움을 더하는 공연의 명소로 유명하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얼마 전 공사를 하면서 새롭게 거듭난 '올림픽홀 뮤즈라이브'는 전문 공연장으로 입지를 굳히면서 요즘엔 많은 공연을 유치하고 있다.

조금은 때 이른 시큼한 공기, 그리고 그 주변을 수놓고 있던 오색 빛깔의 단풍들은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그 안에 있던 오솔길을 거닐면서 나도 모르게 흥얼거렸던 노래들. 평소와는 다르게 기대에 부풀어 한껏 마음을 드러내면서 누군가가 귀에 감아주고, 말을 걸어주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사실 이 곳에 온 사람들 누구나가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가을이라는 계절을 마주하면서 그 감성을 보다 진하게 물들일 무언가가 필요했을 것이 분명하니깐 말이다.


지독히 감미로운 감성의 소유자 정엽


한국을 대표하는 알앤비&소울 그룹인 브라운 아이드 소울(이하 브아솔)의 맏형으로 잘 알려져 있는 정엽. 2007년에 발표한 브아솔의 2집 [The Wind,The Sea,The Rain]에서 솔로로 불렀던 'Nothing Better'의 신드롬으로 그는 일약 이슈의 중심에 서게 된다. 여세를 몰아 2008년 대망의 1집 앨범 [Thinkin' Back On Me]를 내놓고, 솔로로써 가장 재빠르게 기반을 닦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 그는 브아솔의 분주한 행보의 와중에도 싱글앨범을 발표하면서 단독 콘서트를 열만큼 열성적인 모습을 내비쳤다. 게다가 매일밤 자정 12시 MBC FM4U에서 방송되는 '푸른밤, 정엽입니다'라고 하는 라디오 프로의 진행자로써도 맹활약을 하는 반면에 얼마 전에는 티브이 버라이어티 프로인 '우리들의 일밤'의 '나는 가수다'에까지 출연하면서 최고의 자리매김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많은 경로를 통해 알려진 정엽이지만, 사실 그에겐 라디오나 티브이 프로가 아닌 음악에 대한 진정성이 우선적으로 놓여 있다. 무엇보다 그 음악적 감성을 움직이는 것은 특유의 창법으로 진성과 가성을 넘나드는 순간을 포착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가 감동에 호소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느 가수들처럼 지르기만 하고, 기교를 남발하면서 대중을 품기보다는 진솔한 감성을 내보이면서 공감대를 형성했고, 소울이라는 음악을 보다 유연한 풀이로 접근하여 팝의 형식으로 승화시킨 노력 또한 빼놓을 수가 없겠다. 아울러 아름답고 애틋한 노랫말과 캐치한 멜로디의 어우러짐 또한 정엽이라는 가수를 극대화시키는 요소라는 것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약 1년만의 정엽 단독콘서트 'KISS'



사설이 길었는데, 이날은 바로 얼마 전 2집 Part 1 [ME]를 발표한 정엽의 단독콘서트 'KIss'가 예정되어 있던 날로 올림픽공원 곳곳에서 설레는 마음을 포착할 수 있었다. 사실 콘서트의 제목부터가 예사롭지는 않았다. 키스라니, 작년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열렸던 'Touch'를 떠올려보면, 상당히 진전된 분위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건 몸과 몸이 맞닿는 스킨십이 아닌, 마음과 마음이 맞닿아 이룰 수 있는 교감이라는 점을 명시해야 한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듣는 이의 살결을 스치고 가면서 이윽고 그 품에 스며들어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비록 손으로 잡을 수 없을지라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헤아린 그 순간이야말로 '정엽의 대중들에 대한 진솔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된다.

※참고로 이번 단독콘서트는 10월 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에 걸쳐서 '올림픽홀 뮤즈라이브'에서 펼쳐졌다. 어떤 곡들을 불렀고, 어떤 내용으로 전개되었는지도 중요하겠지만, 이것 보다는 글쓴이가 3일 동안 보면서 느꼈던 특별함에 중점을 두어 이야기를 이어갈 것이니, 거론하지 않고 넘어가는 부분이 있어도 미리 양해를 구한다.


풍성했던 영상, 그리고 품격 있던 오케스트레이션


콘서트의 제목 'Kiss'에 걸맞게 오프닝부터 따스함이 감도는 영상들로 수놓기 시작했다. 왠지 시네마천국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릴 만큼 애수 짙게 느껴지던 고전 영화의 키스 장면들. 부끄럽다고 하기 보단 왠지 모를 아련함에 빠져드노라니, 그 찰나의 그리움이란 극에 달했던 것 같다. 이어서 곡들의 중간 중간에는 프랑스에 찍어온 영상으로 정엽의 귀여운 허세를 볼 수도 있었고, 특히나 2부에 접어들기 전에 흘러나왔던 영화 '아저씨', '써니', 드라마 '미남이시네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인 '슈퍼스타 케이', 그리고 홍콩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짜깁기 영상에 정엽의 모습을 합성하여 연출한 코믹한 순간은 그의 재치를 엿볼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로 관객들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특히나 리얼하게 들려주었던 광둥어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아직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는 'Kiss Me'라는 문구는 글쓴이의 꿈에서도 환청으로 들릴 정도니깐 말이다.


이와 함께 웅장함을 더해주던 오케스트라의 연주 또한 공연의 시너지를 극대화시켰는데, '올드 보이', 마당을 나온 암탉' 등의 음악 감독으로도 유명한 이지수의 지휘로 시종일관 유연한 흐름을 마주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곡에서 오케스트레이션이 함께 한 것은 아니다. 언제나처럼 그의 음악을 유려하게 조율하는 밴드 또한 이날의 일원으로서 충분히 빛나는 조연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하나 더 밴드마스터인 에코브릿지의 영롱한 피아노, 키보드 연주는 많은 곡들에서 시작과 끝을 담당하면서 허니듀오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하기도 했다. 이건 여담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의 본명은 이종명으로 정엽의 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된 별명 'X마니'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아마도 당시의 순간만큼은 모두들 철없는 어린아이가 되지 않았었을까 싶기도 하다.


주옥같은 팝들과 히트곡들의 향연


팝을 부르는 모습을 처음 본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격이 달라도 한참 달랐다. 오프닝 영상이 끝나기 무섭게 나지막이 울림을 주던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Lately'와 윌리 넬슨(Willie Nelson)의 'Always On My Mind'로 고즈넉한 분위기를 형성하더니, 더 아이슬리 브라더스(The Isley Brothers)의 'Between The Sheets'와 제임스 모리슨(James Morrison)의 'You Give Me Something'으로 감미로운 사랑의 속삭임을 전해주기도 했다. 여기까지가 잔잔한 팝이였다면, 2부의 시작을 알리던 곡들은 가히 파격적이었다. 이건 한마디로 말하자면, 강렬한 그루브였다.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신명나던 정엽의 모습. 마룬5(maroon5)의 'This Love'로 무희들과 뜨거운 파티를 보여주었고, 이어서 부른 원더스(Wonders)의 'Dance With Me Tonight'으론 락앤롤의 진수를 보여주면서 무대 중앙까지 뛰어나와 팬들과 하나로 일체가 되기도 했다.

이채로운 구성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팝이 아닌, 자신의 곡과 커버 곡으로 꾸려진 무대 또한 관객들에겐 기쁨의 연속이었다. '그대라는 말, '나비효과', '잘 몰랐었다', '담배가게 아가씨', '한 발짝도 난', '아무일도 없었다', '눈물나', '나랑 가자', '니자리', '내사람' 등 주옥 같은 곡들로 물들이면서 관객들을 압도했다. 앞서 몇 곡이 빠졌는데, 떼창을 유도했던 'Never Forget', 나가수 때와는 다른 편곡으로 브릿팝 느낌이 지배적이었던 '잊을께' 그리고 기막힌 오케스트레이션 편곡이 돋보였던 'Nothing Better'에서는 무대와 관객의 소통이 절정에 다다랐다.


이렇게 이루어진 일체감과 절정감. 그 충격적인 하이라이트는 나가수에서 커버했던 주현미의 곡 ' 짝사랑'에서 그 실체를 드러낸다. 위에서 ''Dance with me tonight'를 부르면서 관객석 중앙까지 뛰어나왔다고 했는데, 결코 그걸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중앙의 자그마한 무대에 선 정엽은 곡이 끝나기 무섭게 여성들에게 외치기 시작했다. '이 무대에 올라올 여성분은 없냐고' 말이다. 어떤 여성들이 이 기회를 마다하리오. 당연히 3일 공연에 있어 세 명의 여성이 이 커다란 행운을 거머쥐면서 그 짜릿한 황홀함을 그의 숨결 앞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코앞에서의 노래는 물론이요, 게다가 서로의 체온을 감지하면서 블루스까지 추었다니, 이 같은 광경을 어디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3일의 공연, 매일 같이 다른 훈남 게스트의 등장

이제 특별함의 마지막이다. 작년의 기억이라면, 첫날엔 싸이가 둘째 날은 아이유가 게스트로 와서 그 자리를 빛내주었는데, 올해는 그 형편성이 조금 달랐다. 일단 여성 게스트는 없었다는 것이며, 얼마큼 더 여성의 심금을 울리고 싶었는지 3일 내내 남성 게스트가 등장을 했다. 첫날은 이승기가 나와서 '아직 못다 한 이야기'와 '여행을 떠나요'를 부르면서 근래에 들어 승승장구하는 입담을 과시했고, 둘째 날은 영화 '도가니'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공유가 무대에 나와서 정엽과 즐거운 토크를 이어갔다. 비록 제대로 된 'Nothing Better'의 협연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팬서비스 차원에서 무반주로 한 소절 불러준 것이 그나마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기회였다. 마지막으로 삼일 째에 등장한 슈퍼주니어의 규현은 아이돌답지 않은 뛰어난 성량으로 정엽과 함께 'Nothing Better'를 비롯해서 화이트의 '7년간의 사랑'을 부르면서 많은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감동적인 여운을 뒤로하고 내년을 기약하다


공연의 끝자락 그 흥겨움을 뒤로하고, 여운을 예고라도 하는 듯이 읊조리던 'You Are My Lady'. 고요함과 어둠에 쌓인 장내에 더 짙은 외로움의 호소로 일격을 가하면서 그는 그렇게 메인 무대 위로 올라서서 안녕을 고하고 사라져갔다. 어떠한 공연이던 간에 마찬가지겠지만, 그 뒤를 잇는 관객들의 앵콜 요청.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쉽게 그 자리로 돌아오지 않던 정엽은 관객들의 함성이 절정에 달했을 때 조용히 등장을 하여 'Without You'를 열창하기 시작했다. 혹여나 하는 마음에 마지막 날은 한 곡 정도 더 앵콜을 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긴 했지만, 결국 앵콜 곡은 한 곡으로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글쓴이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와 있던 누구나가 진심으로 마주했을 공연. 화려함도 있었고, 특별함도 있었지만, 3일간의 대서사시는 의외로 소소하게 막을 내릴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이상의 감동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일단은 그날의 추억을 가끔이라도 떠올리면서 기다리자. 내년 3월이면 2집 Part 2 앨범으로 더욱 더 풍성한 음악을 들려줄 것이고, 봄날의 콘서트 또한 약속을 했으니깐 말이다. 분명 멀지 않은 기약,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또 다시 봄이 오면, 지난 시간을 곱씹으면서 이곳에 왔던 모두들 눈앞에 펼쳐지지 않은 새로운 날에 감성을 아니 정엽앓이를 호소하겠지.

Posted by jazzne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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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석

    아... 좋다.... 많이도 불렀구만요 ㅋㅋ 나오신 여성분들 봉잡았네요 ㅋㅋㅋㅋ

    2011.10.19 10:37 [ ADDR : EDIT/ DEL : REPLY ]